이미 떠난 비행기가 석 달 뒤 출발로 떠 있었다

순위표를 출발 안내판으로 바꾼 날

어제 떠난 비행기가 안내판에는 석 달 뒤(11/28) 출발로 다시 떠 있다
어제 떠난 비행기가 안내판에는 석 달 뒤(11/28) 출발로 다시 떠 있다크게 보기

어느 날 아침, 폰으로 미미를 열었다. 목록 한가운데 이런 날짜가 떠 있었다.

11/28 토

미미는 일주일 안에 실적을 발표하는 회사만 고른다. 석 달 뒤에 발표하는 회사가 여기 있을 리가 없다. 들여다보니 그 회사는 어제 발표를 마친 회사였다.

공항으로 치면, 어제 떠난 비행기가 출발 안내판에 "석 달 뒤 출발" 로 다시 떠 있는 셈이었다.

순위표를 출발 안내판으로

미미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다. 매주 토요일, 다음 한 주 안에 실적 발표를 하는 미국 회사를 일곱 개까지 골라 점수를 매긴다.

그 전까지 첫 화면은 순위표였다. 점수 높은 회사가 맨 위, 낮은 회사가 맨 아래. 맛집 순위표 같은 모양이다.

그런데 순위표는 "누가 제일 좋은가" 에는 답해도 "언제냐" 에는 답하지 않는다. 발표가 새벽에 나오니 미미를 여는 건 대개 아침이다. 아침에 궁금한 건 이거다. 어젯밤엔 누가 발표했지? 오늘 밤엔 누가 하지?

그래서 첫 화면을 출발 안내판처럼 바꿨다. 발표 날짜 순서로 줄을 세우고, 맨 위에는 '오늘 밤 발표' 카드를 띄웠다. 원하는 모양을 말로 설명하고, 그림은 AI 가 그렸다.

점수 순서로 줄 선 순위표(왼쪽)를 발표 날짜 순서로 줄 선 출발 안내판(오른쪽)으로 바꿨다
점수 순서로 줄 선 순위표(왼쪽)를 발표 날짜 순서로 줄 선 출발 안내판(오른쪽)으로 바꿨다크게 보기

실제 미미 화면으로 보면 이렇다.

처음 — 바꾸기 전 첫 화면. 점수 큰 순서로 선다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
처음 — 바꾸기 전 첫 화면. 점수 큰 순서로 선다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크게 보기
바꾼 뒤 — 맨 위에 '오늘 발표' 카드, 그 아래 날짜별 목록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
바꾼 뒤 — 맨 위에 '오늘 발표' 카드, 그 아래 날짜별 목록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크게 보기

※ 이 글의 미미 화면은 그 시점의 미미 프로그램으로 다시 그린 것이다. 화면 속 회사와 점수는 미미가 검사용으로 저장해 둔 지난 기록이라, 그날 실제로 떠 있던 화면과 다르다. 특정 회사를 사거나 팔라는 뜻이 아니다.

그리고 몇 시간 만에, 안내판이 틀린 걸 두 번 봤다.

하나 — 아침인데 어제 화면

바꾸고 처음 맞은 아침, 폰을 열었더니 맨 위 카드에 이렇게 떠 있었다.

오늘 발표 3 · 9/2 수

찍힌 날짜는 어제였다. 어제 화면이었다.

아침인데 폰에는 어제 날짜 화면이 그대로 떠 있다
아침인데 폰에는 어제 날짜 화면이 그대로 떠 있다크게 보기

미미 화면은 새 데이터가 들어올 때만 다시 렌더링됐다. 밤사이 새 데이터가 없으면 화면도 그대로다. 어제 신문을 오늘 아침 현관에서 다시 집어 든 셈이다.

순위표일 때는 상관없었다. 점수는 하룻밤 사이에 안 바뀌니까. 안내판이 되자 시간이 화면의 일부가 됐고, 멈춘 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. 시간이 지나면 화면을 저절로 다시 그리게 고쳤다.

둘 — 어제 떠난 비행기

두 번째가 맨 처음 말한 그 11/28 이다. 같은 일을 겪은 회사가 하나 더 있었다. 그쪽도 석 달 뒤 날짜로 떠 있었다.

미미는 매일 아침 회사마다 "다음 발표일" 을 새로 받아 온다. 그런데 어제 발표를 마친 회사라면, 오늘 받은 "다음 발표일" 은 당연히 다음 분기, 석 달 뒤다. 화면은 그 새 날짜를 그대로 띄웠다.

다행히 틀린 건 화면뿐이었다. 점수가 맞았는지 매기는 쪽은 처음부터 뽑던 날 적어 둔 발표일을 쓰고 있었다. 한 회사를 두고 채점은 진짜 발표일을, 화면은 석 달 뒤 날짜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.

고친 방법도 거기서 나왔다. 발표를 마친 회사는 화면도 뽑던 날 적어 둔 날짜를 따른다. 비행기가 떠났으면 안내판도 "출발함" 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.

이 고장은 순위표일 때부터 있었다. 그때 날짜는 줄 끝의 작은 글씨라 틀려도 눈에 안 띄었다. 날짜로 줄을 세우자 틀린 날짜가 틀린 자리에 줄을 섰다. 그래서 보였다.

그때 무슨 생각이었나

오..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네..

이것 또한 우연히 알게 되었다. 다른 작업을 하다가.

덧붙임 — 한 달 뒤

한 달쯤 지나, 첫 화면 맨 위에 매일 아침 볼 시장 브리핑을 얹기로 했다. 그러면서 화면을 다시 짰다. 이번 주를 요일 칸으로 나누고, 칸마다 그날 발표하는 회사를 세웠다. 달력처럼.

이번 주를 요일 칸으로 나눈 새 첫 화면 — 칸마다 그날 발표하는 회사가 선다
이번 주를 요일 칸으로 나눈 새 첫 화면 — 칸마다 그날 발표하는 회사가 선다크게 보기

그러자 '오늘 발표' 카드가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됐다. 그날 이렇게 답했다.

나 · 미미 작업 창
오늘 발표 카드는 어차피 일자가 있으니까 불필요할듯

그리고 하나를 더 요구했다.

나 · 미미 작업 창
순위가 아니고 점수로 나와야 되는데..

순서는 날짜로 두고, 줄마다 점수를 숫자로 보여 달라는 말이다. 순위는 그 주 후보가 몇 개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. 후보가 둘뿐인 주엔 낮은 점수도 1등이니까.

한 달 뒤 — 맨 위 브리핑, 그 아래 요일 칸. '오늘 발표' 카드가 없어졌고 줄마다 점수가 붙었다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
한 달 뒤 — 맨 위 브리핑, 그 아래 요일 칸. '오늘 발표' 카드가 없어졌고 줄마다 점수가 붙었다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크게 보기

그날 저녁 폰으로 열어 보니 글자가 너무 작았다. 글자를 키우고, 한 줄에 다 안 들어가는 줄은 두 단으로 나눴다. 다음 날에는 맨 위 머리 색도 밝게 바꿨다.

지금 — 글자를 키우고 줄을 두 단으로, 머리는 밝은 종이색으로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
지금 — 글자를 키우고 줄을 두 단으로, 머리는 밝은 종이색으로 (다시 그린 화면 · 실제와 다름)크게 보기

처음 바꾼 축은 그대로다. 줄은 지금도 날짜 순서로 서고, 떠난 비행기는 지금도 뽑던 날 적어 둔 날짜로 남는다.

지금 보면

큰 의미는 없다. 화면을 바꾸는 거니, 그에 맞게 바꿔야지.

오늘의 연습

줄을 세우는 기준을 바꾸면, 그 기준이 틀린 게 제일 먼저 보인다. 순위표에선 날짜가 틀려도 몰랐고, 안내판에선 바로 알았다. 화면을 바꿀 때 "무엇으로 줄을 세우나" 를 먼저 정하면, 그게 곧 그 화면이 검사받는 기준이 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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